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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의 발랄하고 엉뚱한 문화와 문학에 대한 사색

[책 리뷰] 한강 소설 흰,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by 그저 나예요 2021. 4. 17.

친구네 집들이를 빈손으로 갔다 빌려온 책, 한강 소설 흰.
한강 소설이다 보니 막 밝고 경쾌하진 않지만, 쉽게 휘리릭 읽힐거야라며 추천을 받았는데,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책이었다.
아주 어둡다고 하기에는 하나의 일화의 내용이 워낙 짧아, 심연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아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는 충분히 던져주고 있어, 읽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책은 한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분량의 에피소드를 ‘나’, ‘그녀’, ‘모든 흰’이라는 주제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흰은 한강의 자서전 같다가도, 소설인가 싶기도 하여, 에세이, 수필, 소설의 경계를 왔다리 갔다리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 적인 부분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그 애매모호함이 책을 읽는데 수월함을 주지 않았나 싶다.

 

몇 번을 되짚어 읽게 된 에피소드와 구절이다.

 

진눈깨비

그렇다, 삶은 누군가에게 특별히 더 힘겨움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제일 힘들고, 내가 가장 안쓰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모든 것은 언제 가는 지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 사라진다고 해도, 현재 호의적이지 않음이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 하지만, 어차피 젖고 있다면, 나의 진눈깨비가 비나 눈인지, 얼음이나 물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좋을 수 있고, 때론 모른 채 물러남을 지켜보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생은 계속해서 움직이니, 그 흐름대로 두어 보는 것도 그 나름 즐거웁지 아니할까. 

 

각설탕

이 에피소드를 읽으며 떠오른 영화 각설탕.

말에게 각설탕은 해로운 것이지만, 그 단맛과 사랑, 애정을 담아 주는 기수(시은, 임수정)의 마음에 천둥이는 한껏 매료된 듯하다.

독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받아들이는 천둥이.

후에 올 고통과 지금의 행복감, 어떤 선택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것이 옳다 할 수 없으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을 터.

모든 게 나쁠 수 없고, 전부가 좋을 수 없다.

흐르는 동안 만나게 되어 겪고 지나가며, 흔적을 남기기도, 잊히기도 하는 일들일 뿐.

영화와 이 에피소드와 나의 감상은 상관이 없지만, 각설탕이 귀한 것이라는 의미는 같지 않을까 싶다.

 

연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친가, 외가 모두 조부모님이 돌아가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사랑은 잘 모른다.

유일하게 먼 촌수의 할머니 (일명 대천 할머니라 불렀다) 한 분만은 아주 가끔 찾아뵈어, 조부모의 사랑이 이런 건가 하고 짐작 정도만 할 만큼이다.

대천 할머니께서 돌아가셔, 장례를 치르고 할머니의 옷가지를 태우던 날.

그날의 색, 풍경, 흩어지는 연기, 자식들의 표정, 무겁게 퍼져있는 아픔을 느끼며, 내게 유일하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조각으로나마 선물해주신 분을 보냈다.

추억과 죽음이 어우러져 있을 때, 그 기억은 바래지 않는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 작은 계기로도 찾아와 가슴을 건드린다.

 

침묵

태고의 침묵은 희다.

깨끗하고 순수하고 맑은 침묵.

혼자만의 시간 또한 그렇다, 귀하고 희다.

 

작별

죽은 이들은 살아있는 자의 안에서 존재를 이어간다.

희미하든, 선명하든, 시도 때도 없이든, 가뭄에 콩 나듯 이든, 명백히 되살아 나는 순간이 있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존재, 사는 것이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삶도 있다.

죽음과 삶의 불분명하고 오묘한 경계선.

그러나 작가는 얘기한다, 그리고 나 또한 외치고 싶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여담으로 책을 소중히 하고 아끼는 사람의 책은 빌리기가 참 어렵다. 함부로 까진 아니더라도 그 사람만큼 곱게 다루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사서 보기는 부담스럽고… 그래서 도서관이 필요한 것일까?

 

  •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도: 9/10
  • 한강 작가가 호불호 중 호라면 하는 추천 점수: 8.9/10

묵은 고통, 새로운 고통, 현세의 고통, 삶은 고통

 

 

묵은 고통, 새로운 고통, 현세의 고통, 삶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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