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전문가의 발랄하고 엉뚱한 문화와 문학에 대한 사색

[영화 리뷰] 인간 본성(성선설/성악설/성무선악설), 모성애, 그리고 영화 크루엘라

by 그저 나예요 2021. 7. 13.

영화 크루엘라에 대한 리뷰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본 바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 크루엘라의 두 엄마를 비춰 바라본 모성애

남작 부인 바로네스(엠마 톰슨)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여, 자식인 에스텔라(크루엘라, 엠마 스톤)가 태어나자 자신의 세상이 무너진다 여겨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누군가는 잔인하다 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을 수도 있다.
모성애가 본능인지, 길러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의 본능이라고 강조하고 강요하며, 무조건적인 양육과 애정을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다.
사람이 상황, 입장, 신체적 변화 등을 받아들이는데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기에, 엄마가 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리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자신의 변화와 자신이 품고 있는 새 생명에 대해 해득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나혜석의 모된 감상기를 접했다. 이 구문이 바로네스와 변화에 적응 중인 엄마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적어본다.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뜯어먹는 악마다. 모친의 사랑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모된 자 마음 속에 구비하여 있는 것 같이 말하나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 나혜석 모된 감상기 중 -

남작 부인에 반해 양어머니 캐서린(에밀리 비샴)은 본인의 딸이 아님에도, 에스텔라를 아무 조건 없이 내리사랑으로 자신의 자식으로 키운다. 크루엘라가 튀어나와도 마음으로 감싸고, 사랑으로 보듬는다. 자신의 뱃속에서 생명을 기르진 않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온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
일반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어머니일 것이다. 그렇기에 캐서린은 대단하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 또한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므로.
에스텔라가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기 바로 직전, 캐서린이 에스텔라의 자퇴를 먼저 선언한다. 너무나 멋졌다. 자신이나 사회적 이목이 아닌, 에스텔라의 삶을 중심에 두고 취한 행동. 엄마로서도 어린 친구를 세상에 적응시키는 조력자로서도 굉장히 멋진 인물임이 틀림없다.
온기를 가득 담아 에스텔라에게 사랑을 주는 엄마를 둔 크루엘라가 에스텔라로 살겠다고 한 결정은 그녀에겐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런 엄마에게 해를 끼친 남작 부인에 대한 분노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전에 읽은 ‘노란 문이 있는 책방’이라는 한국 단편 소설집 중 '블루에서 핑크까지'라는 단편에서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단락이 있다. 
두려움인 동시에 선물인 아이. 당신의 생각은?

한쪽이 맞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쟁점이다. 본능이다, 사회적 산물이라는 다툼보다는 엄마가 되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크루엘라를 통한 인간 본성(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에 대한 고찰

얼마 전 이 이슈에 대해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신은 성선설의 입장이지만, 사람은 악에 빠지기 쉬울 뿐이라고 했다. 난 성선설을 믿고, 사람에겐 무수한 긍정적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지만, 성무선악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환경, 상황 등이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로 인해 방향이 정해지지만,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과 계속해서 변화하는 주변에 의해, 끊임없이 달라지고,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긴다.

부정적 영향을 외부로부터 받더라도, 밝고 활기찬 사람이 될 수 있고, 선한 사람이 고통스러운 계기 때문에 악함을 갈고 닦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개인의 노력, 의지, 동기 등이 중요하고, 이를 도와주는 조력자, 사랑을 주는 사람 등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학습과 배움 또한 이 과정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교과서, 책, 이론, 지식 등뿐만 아니라 삶, 세상, 인간관계 등에서도 배우고 나아가는 자세는 중대하다.

디즈니 만화 영화 ‘101 달마시안’을 보면, 크루엘라는 결국 악이 되기로 결정한 듯 보인다. 본인의 선택이긴 하지만, 그 선택의 근간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끊임없이 끝까지 아니라고 얘기하고, 사랑을 주며, 보다 긍정적인 길로 갈 수 있도록 돕는 주변인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크루엘라가 낫다, 에스텔라가 낫다가 아니다. 그녀는 에스텔라로서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잔혹한 계기가 없었다면, 에스텔라로 잘살아갔을 것이다.
크루엘라는 본인이 난 악마로 살겠다고 결정했지만, 달마티안도, 친엄마도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다만, 친엄마에겐 응징하고, ‘101 달마시안’을 비춰봤을 때, 자신의 분노를 좋지 않은 방법과 방향으로 표출하긴 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순하고 착한 조각도 고약스럽고 못된 구석도 모든 사람에게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크루엘라의 마음 안에 있을 수 있는 선함으로 성선설을 대변하는 걸까?
아니면, 성무선악설에 따라 양어머니의 사랑이 크루엘라에게 연민, 관용 등을 심어준 것일까?
혹은, 결과적으로 악하게된 크루엘라는 성악설이라는 인간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정해진 답은 없다, 각자의 의견이 있을 뿐.

 

  • 어른을 위한 디즈니 만화 영화를 기대한다면 추천 점수: 6.8/10

 

모성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모성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모성애, 여성의 본능일까? 사화적 산물일까? 그렇다면, 부성애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you-are-just-you.tistory.com

728x90

댓글